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린 북 (문단 편집) ==== 비판에 대한 반박 ==== 토니와 셜리 두 인물은 각자 백인과 흑인의 대표가 아니다. 백인인 토니는 이탈리아 이민자 계통이므로 당대 선민 백인 주류에 속해있지 않다. 흑인인 셜리 역시 흑인 주류 사회와 외따로 살아온 탓에 당대 흑인 주류에 속해있지 않다. 셜리는 흑인 문화에 대해 무지한 데다 다른 흑인들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소외감마저 느낀다. 작중에서 토니는 백인이 아니라 인간 토니고, 셜리는 흑인이 아니라 인간 셜리다. 또한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토니와 셜리 두 사람의 우정이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에서의 희로애락을 극적으로 다루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토니와 셜리라는 개인에 주목하는 대신 그들을 백인과 흑인으로 구분하고 그들 사이 교류의 가치의 정도를 재는 것은 본 영화를 즐기는 데 있어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인종 갈등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고, 보다 흥미로운 서사를 성립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당초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두 인간의 우정이지 인종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말부에 이루어진 것은 토니와 셜리가 친구로 거듭난 것뿐이며, 차별이 만연한 나머지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백인 구원자' 클리셰에 대한 가장 큰 반박은 토니는 [[이탈리아]]계이기 때문에, 영국계 백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노예제와 흑인 탄압의 주체는 영국계 백인들이었고, 이탈리아계 백인들에게 같은 책임을 씌울 수 없으므로 이 영화를 일반적인 백인 구원자 영화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 상술되었지만 미국 내 백인사회에서도 출신지에 따른 차별은 빈번했다. 특히 토니 같은 이탈리아계는 주류 백인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마피아|범죄자]]가 되거나,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히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기 쉬웠다. 남부 경찰이 토니가 '이탈리아'계라는 걸 알자 마자 '넌 반은 흑인이니까 흑인 운전수 할 만하네'라고 조롱한게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빈번한 일이었으니.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은 모두 영국계 백인들 몫. 아얘 '하얀 흑인'취급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백인들은 말할것도 없고.] 실제로 작중에서도 화장실 조차 쓰지 못하게 차별하는 백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셜리에게 토니가 '나는 이탈리아인이고, 오히려 노점상 하는 유대인들과 같은 처지'라고 반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하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인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비교해도 훨씬 낫다는 의견도 많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흑인이 백인의 운전 기사로 나왔고 거의 일방적으로 시종 노릇을 했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백인인 셜리가 흑인의 운전 기사로 나왔고 서로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셜리는 일방적으로 토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토니에게 매너와 문법 등을 가르치며 교양을 쌓게 해 준다[* 특히 이 '[[교양]]'은 '백인 구원자'를 다룬 작품군에서 '백인 주인공'이 '흑인 조연'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다뤄져왔다.]. 아내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게 돕고 경제적인 위기에서 토니를 구해준 것 역시 셜리다. 또한 셜리는 토니와 함께 하며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 것도, 금전적 이득을 얻은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인종의 차이를 제외하면 사회적 계급과 금전적 부유함은 토니보다 셜리가 아득히 위에 있었으며, 셜리는 이미 '흑인들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을 깨겠다'는 명확한 신념을 갖고 이를 실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방적인 백인 구원자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